본문 바로가기

☞ 지상 무기/- 전차

[한국] Part 1.MBT K1 개발

MBT K1 개발



K1 의 개발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에 의해 설계 되고 한국의 현대정공에서 생산된한국의 주력전차이다.


K-1은 유압식 서스펜션과 토션바 서스펜션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하이브리드형 서스펜션을 도입하였으며 자체도하와 도하키드 장착으로 도하가 가능한 한국의 지형에 맞게한국이 주요 스팩을 주문하여 주문 제작된 한국형 전차이다.

1996년 9월 러시아 차관 상환의 일환으로 도입된 T-80U 의 성능 테스트로 125mm 활강포의 파괴적인 성능에자극받은 한국군은 당초 120밀리 활강포 도입에 부정적이던 모습을 떠나 K1에 120밀리 활강포의 장착형인 ,K1A1을 개발하게 된다. 현재 K1 K1A1의 생산 물량은 1985년 부터 2010년 까지 약 1500 여대에 이르며 현재 차기 전차인 K2 가개발중이다.


▼ 포탑내부용적이 과도하게 좁아 대형의 120mm포 탑재가 어려워지자 포탑을 잘라 대 수술을 한 결과 120밀리 장착은 성공했지만 개량비용이 급상승한 K1A1



▼ 2007년에 공개된 K2 시제 차량.



[개발 배경]

1970년대 한국군은 만성적인 기갑 장비 부족에 시달려으며 한국군의 주력은 북한 전차인 T-54/55와 북한이 차후 도입이 예 상되는 T-62에 비해 열세인 M47 과 M48 패튼 이었다. 또한 2차대전 모델인 M4E8 의 도태로 이의 대체가 시급한 형편이었다.

이에 한국은 M48A5K로의개량을 진행함과 동시에 신형 전차의 생산을

1975년 7월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지시받고

1976년 12월 전차관리 사업단을 결성. 검토끝에 미국의 M60A1 전차의 도입과 라이센스 생산을 추진한다.하지만 미국의 반대에 직면 신형 전차의 한국내생산이 좌절되고 만다.

이에 한국은 물러서지 않고독일의 전차 기술도입을 추진 레오파트1 의 라이센스 생산을 추진하게되고 이에 독일은 차기 레오파트2 전차의 공동 개발을 제안한다. 이러한 기술 도입 국가의 변경으로 한국은 많은 잇점을 얻게 되고 계약 바로 직전까지 가게 된다.


▼ 우리에게 제시 되었던 Leoppart 1 전차.



독일과 한국의전차 기술 협정 소식에 미국은 놀라게되고 기존의 미제무기의 안방을 유럽 국가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에 급히 ROKIT (한국형 차기 전차) 개발 제안을 하게 된다.

한국은 이러한 미국의 제안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미국은M1전차 주 사업자인 크라이슬러 디펜스사를 선정하고 개념 설계와 탐색 개발을 시작 하게 된다. 미국은 대한민국 육군이 요구한 ROC 를 토대로

1981년4월 개념 설계를 마치고

1982년 12월 선행 양산형인 PV1을 출시 하게 된다. 이때 CDI (크라이슬러 디펜스 사)는 제너럴 다이나믹사에 매각되고 사명이 GDLS 로 변경이 된다. 한국은CDI매각후 GDLS사에 현대정공 기술자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팀을 파견한다.

GDLS에서 개발된 시제 차량은

주행 시험 차량인 PV-1 (포탑기능없음)

사격통제장치 시제차량 PV-1 (양산형 차량과 유산한 실용 포탑이 탑재된 외형) 으로 구분되며

PV-1은 미국의 에버딘 전차 시험장에서 주행 시험을 하게 되고

PV-2은 디트로이트 셀프릿지 주 방위군 기지에서 최초 공개 되어

에버딘 시험장에서 본격적인 테스트를 하게 된다.


▼ GDLS 에서 개발 중인 XK1 전차. 양산형의 엔진이 독일제로 교체되어 엔진후부의 디테일이 많이 다르다.



선행시제차량은 GDLS 사의 기술 지원으로 한국에서 5대가 추가 생산되었고

1985년 11월 3대는 육군교육사령부에2대는 국방과학 연구소에 인도 되어 군 운영시험과 (OT) 각종테스트를 실시 하였으며 K1 이란 제식명칭을 받았다.

1987년 7월 양산이 시작되었고

1987년 9월 17일 승진사격장에서 성능 테스트가 실시 되었으며 당시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뜻으로 88전차 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 K1 전차 생산 라인.




[개발 의의]

K1 은 최초 외국의 성능좋은 전차를 M4E8의 대체 차량 확보와 갈수록 증강되는 북한의 전차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신형 전차 도입 사업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술 부족으로 인해 국내 개발이 불가능 했고 지금으로선 단순 전장의 택시 수준이던 K200조차 외국 도입이냐 국내개발이냐는 논쟁으로 시끄럽던 시기였다.거기다미국의 당시 주력이었던M60전차의 도입과 국내 라이센스 생산을추진 하던 과정에서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미국의 기술 이전에 대한 저자세에 부딪힌다.


▼ 반응장갑과 도저 삽날이 부착된 1차 걸프전 당시의 미해병대 M60A1




이에 방향을 유럽으로 돌려 독일을 협상에 끌어 내는데 성공하고미국은 한국이란 커다란 방산 시장을위해 한국형 차기 전차 란 프로젝트란 구상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무기 도입선을 한곳으로 고정하며 우리에게 선택권이 좁아 질수밖에없고우리는주 판매자에게 기술을 구걸할수 밖에 없게 된다.이래서 어느 정도의 무기 구입선 다변화가 필요한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박대통령 행정부의 전략으로 인해 제3세대 전차라고 할수 있는 K1 전차를 얻어 내는데 성공했으나 K1 개발중이던 때 조차도 미국의 기술 보호 주위와 독선적인 행동은 그치지 않아 미 의회는 전차의 심장이라 할수 있는 K1 전차 엔진의 수출 불가를 결정하게 되고 (전차는 파는데 엔진은 안된다고?? !!! ) K1의 장갑 방어력의 핵심인 장갑 내부 충진물을 밀봉 상태로 한국에 전하게 된다.

결국 엔진은 독일제로 바뀌로 장갑은 차후 국내 개발하게 된다.


'☞ 지상 무기 > - 전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론] 전차용 포탄의 종류  (0) 2011.01.28
[우크라이나] T-84 OPLOT MBT  (0) 2010.12.18
[러시아] T-64  (0) 2010.10.26
[이탈리아] C1-Ariete  (0) 2010.10.24
[영국] FV4034 Challenger 2  (0) 201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