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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이슈

[이코노미플러스] 기아차 신형 세단 `K7` 작명 스토리

출처 : 조선닷컴

시각추적·뇌반응 측정 등 첨단 검증기법 활용한 브랜드 선정 눈길

<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아자동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형 세단 K7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K7은 기존 기아차 라인업에서 볼 수 없었던 그랜저급의준대형 세단이다. 기아차로선 새로운 시장 공략의 첨병을 내세운 것이다. K7에는 또 다른 승부수도 깔려 있다. 기아차의 정체성과이미지를 일관되게 통일하는 브랜드 전략이 그것이다.

기아자동차가 새로 출시한 준대형 세단 ‘K7’은 이름부터 큰 화제를 뿌리고 있다.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이른바 알파뉴메릭(alphanumeric) 방식의 차명(車名)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르노삼성자동차가 SM3, SM5, SM7 등의 브랜드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르노삼성은 프랑스 르노가 지분 80% 이상을보유한 외국계 기업이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 중에 알파뉴메릭 방식의 브랜드를 채택한 것은 기아차가 사실상 처음이다.

기아차에게 K7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그 동안 기아차가 판매하는 차종 라인업에는 준대형차가 없었다. 중형차인 로체와대형차인 오피러스 사이에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K7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며 기아차 세단 라인업에 화룡점정을 한 셈이다.

기아차는 야심작 K7의 작명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신경과학 분야 전문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정재승 교수에게 차명 검증 프로젝트를 맡긴 대목이 눈길을 끈다. 기아차는 정 교수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기아차는 다양한 차종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런데 프라이드나 로체 등 주력차종 브랜드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상표등록이 돼있어 수출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나라에 수출하려면 결국 동일 차종의 브랜드를 새로 지을 수밖에 없다. 추가 비용이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아차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알파뉴메릭 방식으로 브랜드를 통일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알파뉴메릭 브랜드 전략의 첫 번째 대상으로 바로 K7을 선택했다.

K7차명 검증을 맡은 정 교수의 말이다. “기아차의 스타일, 지향점, 콘셉트 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조합을 찾는 게핵심과제였다. 기아차 측이 제안한 몇 가지를 포함해 거의 모든 알파뉴메릭 조합을 검토했다. 알파벳이 어떤 뉘앙스를 주느냐 하는점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정 교수는 한국인 100명과 외국인(한국 거주 3년 이상의 자가 운전자) 100명을 합쳐모두 2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도구는 설문조사였다. 여러 후보군 중에서 호감이 가는 차명을선택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런 설문조사에는 한 가지 변수가 숨어 있다. 피실험자들의 응답이 솔직하지 않을 수있다는 점이다. 즉, 기아차가 설문조사 취지를 밝힌 만큼 피실험자들이 기아차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경향이 높게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왜곡 가능성을 걸러내기 위해 이른바 시각추적(eye-tracking) 기법이 동원됐다. 시각추적은 피실험자의 시선이 실제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물렀는지를 조사할 수 있는 과학적 수단이다.

정교수는 설문조사 결과와 시각추적 결과를 종합해 최종 후보군을 가려냈다. 실제 피실험자들이 선택한 후보와 시선이 오래 머무른후보를 합산한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과학적 엄밀성을 더하기 위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활용해 피실험자들의뇌반응도 측정했다. fMRI는 어떤 대상에 대해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장치다.

이런과학적 검증 절차를 거쳐 최종 간택된 차명이 바로 K7이다. 피실험자들이 가장 선호한 알파벳 후보는 K, T, N, Y, Z 등5가지였다. 특히 T는 K와 대등한 경합을 벌였으나 다른 외국 업체가 이미 상표등록을 한 것으로 밝혀져 막판에 탈락했다.

정교수는 “K7은 fMRI 조사 결과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선호할 때 반응을 보이는 뇌 영역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피실험자들은 K7이라는 이름에서 세련되고 혁신적이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외국인들에게서 선호도가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K’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우선 기아차(Kia)와대한민국(Korea)의 영문 이름 첫 글자다. 또한 ‘강함, 지배, 통치’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 ‘Kratos’의 첫 글자이기도하다. 여기에는 ‘경쟁력 있는 신차로 다른 차들을 능가하겠다’는 기아차의 목표가 담겨 있다. 아울러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을추구하는 기아차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데 알맞은 영어 단어 ‘Kinetic’(활동적인, 동적인)의 첫 글자다. 숫자 7은일반적으로 대형 차급을 의미하며, 행운의 숫자로도 대중적 선호도가 높다.

기아차 관계자는 “K7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를 향한 기아차의 의지가 표현된 새로운 차원의 준대형 럭셔리 세단이며, 기아차의 정체성을 반영한 차명을 사용하겠다는 경영층의 강력한 의지로 개발됐다”고 말했다.

K7은 브랜드 네이밍(naming)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아차의 글로벌 전략이 반영된 작품으로 보는 게대체적인 견해다. BMW, 아우디 등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명차 브랜드 다수가 알파뉴메릭 방식의 작명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개발업체 브레인컴퍼니 박재현 네이밍 실장의 설명이다. “K7은 기아차의 브랜드 전략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결과라고 본다.수많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브랜드 통일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네이밍 전략으로 경쟁을펼치기 위한 의도가 함축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이니셜과 숫자 조합의 브랜드 전략이 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에선 K7이라는 브랜드가 우리 국민의 언어적 속성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한국인들은 정서적 측면이 강한데 K7은어딘가 이성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한 브랜드 전문가는 “이른바 감성 마케팅의 시대에 정서적 만족감을채워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소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7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얼마나팔려나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독특한 작명 방식 덕택에 출시 단계부터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이 대목만 보더라도 K7이라는 이름은 이미 효자 노릇을 한 게 아닐까.